북한상? 얼굴에 사상이 보입니까? | 유해진 논란으로 본 평가권력

얼굴에서 사상을 읽으려는 순간, 우리는 실제 사람보다 이미 머릿속에 만든 분류를 먼저 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유해진 배우를 둘러싼 북한상 논란과 얼굴로 사람을 평가하는 심리를 표현한 펜화 일러스트


이번 글은 배우 유해진 씨를 둘러싼 ‘북한상’ 논란에서 출발해, 타인을 평가하는 말이 어떻게 권력과 결합하고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지 살펴봅니다. 확증편향, 외모평가, 집단심리, 표현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외부의 평가가 자기평가로 바뀌는 과정까지 차분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눈의 모양을 보고 정치적 성향을 알아낼 수 있고, 코와 입의 생김새를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느 나라를 좋아하는지,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영화배우 유해진 씨를 향해 ‘북한상’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외모를 겨냥한 인신공격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그는 북한을 편들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고 설명했고, 자신에게는 그렇게 표현할 자유가 있다는 취지로 반박했습니다. 나아가 북한 편을 드니까 그것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취지의 말도 했습니다.

이 영상에서 어느 정당이 옳은지, 영화의 역사적 해석이 옳은지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별도의 토론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오늘 들여다보려는 것은 그보다 훨씬 일상적이면서도 어쩌면 더 오래된 문제입니다. 사람은 언제부터 다른 사람을 평가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 평가가 권력과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라고 하는 문제 말입니다.

판단이 사람의 가치를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다른 사람을 평가합니다. 저 사람은 일을 잘한다, 말을 못한다, 예쁘다, 못생겼다, 똑똑하다, 눈치가 없다, 사람이 괜찮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인간이 타인을 판단하는 것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파악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은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판단이 언제부터 한 사람의 가치를 규정하는 언어로 바뀌는가에 있습니다.

행동과 결과를 평가하는 말,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말

“이번 보고서는 부족합니다”라는 말과 “당신은 능력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앞의 말은 결과물을 평가하지만 뒤의 말은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 행동은 잘못됐습니다”와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도 다릅니다. 전자는 수정할 수 있는 행동을 이야기하지만 후자는 한 사람의 존재를 하나의 문장 안에 가두어버립니다.

정치적인 견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영화의 내용과 근거를 가지고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습니다. 배우가 한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발언을 비판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얼굴을 보니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인지 알겠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논쟁의 대상이 생각에서 사람으로 이동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북한상’이라는 짧은 표현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북한 사람의 얼굴이 따로 있을까요? 대한민국 사람의 얼굴에는 자유민주주의가 나타나고 북한 사람의 얼굴에는 공산주의가 나타나는 것일까요? 같은 민족이 분단된 지 불과 수십 년인데 얼굴의 어느 부분에서 이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일까요? 물론 이런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그것이 조롱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더 분명해집니다. 얼굴에서 사상을 읽어낸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를 특정한 집단에 집어넣은 뒤 그 사람의 얼굴까지 그 집단의 특징처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확증편향: 먼저 내린 판단이 얼굴을 바꾸어 보이게 할 때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쉽게 발견하고 기억하는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설명합니다. 먼저 “저 사람은 저쪽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나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뿐 아니라 표정과 옷차림, 말투와 외모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쉬워집니다. 실제로 얼굴에 사상이 새겨져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만들어진 분류표를 얼굴 위에 겹쳐놓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정치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한 번 ‘무능한 직원’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상사는 그 직원이 낸 좋은 아이디어보다 실수를 더 쉽게 발견합니다. 한 아이를 ‘문제아’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똑같은 행동도 다른 아이가 했을 때보다 더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한번 ‘눈치 없는 사람’으로 규정되고 나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역시 눈치가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평가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평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렌즈가 됩니다.

모든 평가는 같은 힘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훨씬 중요한 문제가 시작됩니다. 모든 사람의 평가가 똑같은 힘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부장에게 “부장님은 일을 정말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부장이 신입사원에게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문장만 놓고 보면 같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신입사원이 부장의 능력을 낮게 평가한다고 해서 다음 달 부장의 인사고과가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인사평가권을 가진 상사가 직원에게 “자네는 능력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면 직원은 그 말을 단순한 의견으로만 들을 수 없습니다. 승진, 계약, 업무 배치, 조직에서의 평판과 자신의 생계까지 그 사람의 판단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관계 안에서는 같은 문장도 무게가 달라진다

그래서 권력관계 안에서 말은 사전적 의미만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수가 학생에게 “당신은 연구자로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할 때, 감독이 신인 배우에게 외모를 평가할 때, 유명한 선배가 이제 막 업계에 들어온 후배의 실력을 사람들 앞에서 조롱할 때, 다섯 명의 친구 가운데 네 명이 한 사람의 외모를 웃음거리로 만들 때, 부모가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자녀에게 “너 같은 애가 뭘 할 수 있겠니”라고 반복해서 말할 때 그 말에는 내용 이상의 힘이 실립니다. 듣는 사람에게는 자유롭게 반박할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권리는 언제나 동일한 비용으로 행사되지 않습니다. 상사의 외모평가가 불쾌하다고 말한 직원은 다음 인사평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의 말을 반박하려는 대학원생은 졸업과 추천서를 생각합니다. 집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친구가 자신을 조롱할 때 한 사람이 “그 말 불쾌해”라고 말하려면 관계에서 밀려날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가족에게 맞서려는 사람은 당장 생활의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침묵이 동의가 아닐 때

그래서 어떤 관계에서는 침묵이 동의가 아닙니다. 웃었다고 해서 재미있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았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웃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되잖아”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권력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 말은 매우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있는 능력과 말해도 안전한 환경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평가권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

그래서 권력의 가장 강력한 모습은 언제나 명령이나 협박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평가할 수 있는 위치 그 자체로 나타납니다. 저는 이것을 ‘평가권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 집단에서 평판을 만들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힘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업무를 평가하는 것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번 일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당신은 일을 못합니다”가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원래 센스가 없는 사람이야”가 됩니다. 업무평가가 능력평가로 이동하고, 능력평가는 성격평가로 이동하며, 어느 순간 외모와 학력, 출신과 나이까지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왜 어떤 평가는 오래 남는가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권력을 오래 행사할수록 자신의 판단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무게를 체감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10초짜리 농담이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몇 년 동안 기억되는 문장이 될 수 있습니다. 상사는 회식자리에서 웃으며 “김 대리는 얼굴 때문에 영업은 힘들겠어”라고 말하고 다음 날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 대리는 다음 고객을 만나면서 자기 얼굴을 의식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여러 사람 앞에서 “쟤는 원래 머리가 좀 나빠”라고 말하고 모두 웃었다면 말한 사람에게는 몇 초의 웃음이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자기평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외모평가가 강력한 이유

특히 외모평가가 강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능력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얼굴, 키, 체형, 나이, 장애, 출신처럼 쉽게 바꾸기 어려운 특성을 공격받으면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끼기 쉽습니다. 그래서 외모를 이용한 조롱은 매우 값싼 공격이면서 동시에 강력합니다. 논리도 필요하지 않고 증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주장에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웃음거리가 될 특징 하나를 찾아 집단 앞에 던져놓으면 됩니다.

조롱이 집단의 평가로 번질 때

그리고 사람들이 웃기 시작하면 공격자는 혼자가 아니게 됩니다. 이때부터 또 다른 심리가 작동합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하지 않을 행동도 집단 속에서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먼저 한 사람을 조롱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거기에 동참하면, 그다음 사람부터는 자신의 행동을 독립적으로 판단하기보다 분위기를 따라가기 쉬워집니다. “다들 그러는데 뭐”, “농담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조롱을 받는 사람에게는 한 사람의 농담이 어느 순간 집단 전체의 평가처럼 느껴집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은 어디까지 가는가

이번 사건에서도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한 정치인의 ‘북한상’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란은 온라인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해진 씨가 광고하는 제품에 대한 불매 움직임이 나타났고, 결국 그의 자택 앞에서 집회까지 열렸습니다. 소속사는 사생활 침해와 신변 위협, 명예훼손 행위를 엄중하게 보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물론 이 모든 행동을 한 정치인의 한마디 때문에 일어났다고 단순한 인과관계로 묶어서는 안 됩니다. 각각의 행동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각각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많은 팔로워를 가진 사람의 한 문장은 그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여행합니다. 그 말을 들은 수천 명 가운데 누군가는 댓글을 달고, 누군가는 사진을 퍼뜨리고, 누군가는 불매를 주장하며, 누군가는 실제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향력이 커질수록 필요한 것은 말을 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말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상상하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표현의 자유와 책임 있는 말은 다른 질문이다

여기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권력을 비판하고, 작품을 비평하고, 역사 해석을 논쟁하고, 정치인의 주장에 반대할 자유가 없다면 민주주의도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할 자유가 있는가”라는 질문과 “그 말이 좋은 말인가”, “책임 있는 말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용하기에 적절한 말인가”라는 질문은 서로 다릅니다. 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우리가 실제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에게 잔인한 말을 할 자유가 있다고 해서 그 말이 우정에 적절한 것은 아니며, 부모가 자녀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언제나 법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아이에게 남기는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의 외모를 평가한 한마디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조직 안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관계에는 법이 개입하기 훨씬 전부터 지켜야 할 경계가 있습니다.

정의로운 구경꾼에서 우리 자신으로 시선을 돌리기

그리고 저는 이 문제를 어느 한 정치인의 이야기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끝내는 순간 우리는 아주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런 사람이 문제야.” 그렇게 말하고 영상을 끄면 나는 언제나 정의로운 구경꾼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설명해 주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은 쉽습니다. 어려운 것은 같은 심리의 흔적을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권력자이면서 동시에 약자다

생각해 보면 우리 대부분은 권력자이면서 동시에 약자입니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이 집에서는 자녀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수에게 평가받는 학생도 후배들 앞에서는 영향력 있는 선배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도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종업원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손님이 됩니다. 외모 때문에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인터넷에서는 다른 연예인의 얼굴을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권력은 특정한 사람에게 영원히 붙어 있는 훈장이 아닙니다. 관계가 바뀔 때마다 이동합니다. 그래서 “나는 약자다”라는 사실이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상처를 자동으로 정당화해 주지는 않습니다. 나 역시 누군가 앞에서는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더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더 나이가 많으며,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선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입니다.

평가가 필요해도 사람 전체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는 누군가의 능력을 평가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평가는 필요합니다. 회사에서 상사는 직원의 업무를 평가해야 하고 교사는 학생의 학업을 평가해야 하며 부모는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가르쳐야 합니다. 모든 평가를 폭력이라고 부른다면 교육도 조직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평가의 대상입니다. 일을 평가해야 할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기 시작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이 부분은 준비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넌 원래 성의가 없어”라고 말하고, “이번 시험 결과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에서 “넌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며, “그 행동 때문에 내가 불편했다”고 설명할 수 있는 자리에서 “넌 인간성이 문제야”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상대가 고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를 규정하기 시작합니다.

외부의 평가가 내부의 목소리가 될 때

그리고 이런 평가가 반복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평가받던 사람이 그것을 거부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러나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고, 특히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계속 듣게 되면 어느 순간 질문이 바뀔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외부의 평가가 내부의 목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상사가 없어도 스스로 “나는 일을 못해”라고 말하고, 부모가 곁에 없어도 “나는 원래 머리가 나빠”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놀리던 친구들을 만나지 않아도 거울을 보면서 그들이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가장 강력한 평가권력은 어쩌면 상대가 더 이상 나를 평가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그 사람의 눈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판하되 사람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법

그래서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하고, 무능한 업무는 개선을 요구해야 하며, 정치와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논쟁해야 합니다. 다만 사람과 생각을 구별하자는 것입니다. 주장에 반대하면서 사람을 모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력을 평가하면서 존엄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서 존재 전체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가 나보다 약한 위치에 있을수록 내가 가진 말의 무게를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모 공격에 외모 공격으로 답하지 않기

여기서 한 가지 더 어려운 문제가 남습니다. 누군가 외모로 사람을 공격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그 사람의 외모를 똑같이 공격하면 속은 시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정치적 논쟁에서도 상대가 ‘북한상’이라고 하면 반대편에서는 다른 ‘상’을 붙여 돌려주는 방식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비판했던 바로 그 규칙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 편을 공격하는 외모 비하는 나쁘지만, 나쁜 사람의 외모를 조롱하는 것은 괜찮다.” 이 원칙은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외모를 조롱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외모도 조롱하지 않아야 합니다. 출신을 가지고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나와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사람의 출신도 공격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기준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적용될 때 존엄의 원칙이 아니라 우리 편의 특권이 되어버립니다.

혐오에 맞서며 기준을 다시 세우기

그래서 혐오에 맞서는 가장 어려운 방법은 더 강한 혐오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상대가 무너뜨린 기준을 내가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당신이 한 말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얼굴을 공격하지 않겠다.

당신의 행동은 비판하겠다. 그러나 당신이라는 사람 전체를 모욕하지 않겠다.

당신이 나와 다른 정치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당신의 인간적 가치를 낮추지 않겠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만 필요한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회는 사람을 한 단어로 규정하면서 거칠어진다

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잔인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웃습니다. 다음에는 학력으로 사람을 나누고, 직업으로 사람의 수준을 판단하며,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따라 사람을 규정합니다.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고, 젊다고 얕보고, 돈이 없다고 실패한 사람처럼 취급하며,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 자체가 다른 종류인 것처럼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언어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얼굴만 보면 아니니까요. 출신만 보면 아니니까요. 학력만 보면 아니니까요.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전부 알 수 있다고 믿게 되니까요.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사상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학력에는 인격이 적혀 있지 않고, 직업에는 인간의 등급이 적혀 있지 않으며, 통장 잔액에는 삶의 가치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한 번의 실패에 그 사람의 가능성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의 실수로 한 인간 전체를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한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편합니다. 무능한 사람, 이상한 사람, 못생긴 사람, 늙은 사람, 요즘 애, 꼰대, 좌파, 우파, 북한상.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편리한 분류가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 나는 누구 앞에서 힘을 가진 사람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상을 듣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기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아 상처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상사의 한마디, 부모의 한마디, 친구들의 웃음, 선생님의 평가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반대편도 한번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누구 앞에서 힘을 가진 사람입니까? 내 표정 하나를 살피는 사람은 누구이며, 내가 무심코 던진 평가를 오래 마음에 담아둘 사람이 혹시 내 주변에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일 수도 있고 후배일 수도 있으며, 직원이나 배우자, 학생,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행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사람의 존재를 평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권력관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조직에는 책임자가 필요하고, 학교에는 교사가 필요하며, 부모와 자녀에게도 서로 다른 역할이 있습니다. 그러나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힘으로 사람의 존엄까지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성숙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힘이 생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얼굴에서는 사상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에서는 사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없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는 때때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드러납니다. 오늘 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지금 평가하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 자체입니까. 그리고 혹시 그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정말 괜찮아서 침묵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진 힘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심리과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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